주일 낮 설교
2010.06.13.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형상 회복" (청장년세례)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146회 작성일 2011-12-0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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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13.주일낮예배(청장년세례식)

하나님의 형상 회복 창세기 1 :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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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이나 무신론 관점에서는 사람에 대한 해석이 다르겠지만, 성경은 인간의 본질과 운명을 두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이는 "신의 성품이 사람 안에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있고, 또한 동물과 동일한 본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은 신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도 영적인 존재요,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도 인격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적인 존재요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신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반영하기 위해... 즉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 실체를 그대로 반사하기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 죄는 우리 안에 있던 하나님 모양과 형상을 모두 파괴시켰습니다. 그래서 동물과 같은 육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의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당신의 피와 살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청장년 세례식이 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약속이요, 서원이요, 결단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과 서원을 이룰 때 이 세례식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캄캄한 밤 아무도 없는 광야길을 갈 때 얼마나 두려움이 컸겠습니까? 그때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야곱의 안전과 축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때 야곱은 세 가지 서원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다. 교회를 세우겠다. 십일조를 드리겠다. 그런데 야곱은 이 서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딸이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은 살인자가 되며, 집안이 풍비박산이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기억하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결국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의 아들들이 12지파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례는 내가 하나님 자녀로서 이런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서원하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잘 지킬 때, 야곱이 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장 소중하고 복된 시간 중에 하나가 바로 한 사람이 예수 믿고 세례 받는 시간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세례식을 통해 세례 받는 성도는 물론 함께 참여하는 성도 여러분도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의식에 참여하는 것에서 머물지 말고, 사모하며 결단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례를 통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세례 받는 자들에게 하락하시는 성령의 은혜와 복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세례란 무엇인가? (세례에 담긴 의미)

 

세례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세례는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 되었다는 표지입니다.

세례라는 말 자체가 씻는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세례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은 물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을 때 사용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311절에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는 우리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았다고 하는 증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우리 삶이 어떠했습니까? 세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실수와 죄를 범하며 살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을 만나고 보니 해결해야 할 죄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죄 문제의 해결, 그 증표가 바로 "세례"인 것입니다.

2) 세례란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었다는 표지입니다.

로마서 63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에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란 내가 완전히 죽었다는 증표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 죽으심이 나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세례 받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옛 성격이 죽지 않았고, 분노가 죽지 않았고, 정욕이 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세례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는 의식입니다.

3) 세례란 완전히 죽었다가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표지입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도 하며, '새 생명을 얻었다'고도 합니다. 세례는 죄에 대하여는 죽었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다시 살았다는 고백이며 선포입니다. 로마서 64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죽고 성령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옛길을 버리고 옛 습관도 버리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삶이 의로워지는 삶이고 부름 받은 삶이고 인도받는 삶이고 성화의 삶인 것입니다.

4) 세례는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표지입니다.

의식이나 예식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널리 선포하고 알림으로 공식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의식은 세례 받는 사람이 이제 명실상부하게 죄 사함을 얻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많은 성도와 교회 앞에서 선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법적 자녀로서 그의 상속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가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의 수혜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우리가 상속받을 영광스러운 유산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예식이며, 영광스러운 예식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의 나라를 상속받을 후사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세례의식은 축복이며, 우리가 사모함으로, 감격하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면 세례 받은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세례는 약속이요, 서원이요, 결단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받은 사람의 삶은 '변화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변화는 우주 가운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서양 속담에도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알을 깨고 나와야 병아리요 껍질을 벗고 나와야 나비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세례 받는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믿음으로 세례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삶으로 전환하라.

우리가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고 가장 우선되는 삶이 뭡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삶입니다. 본문 26절에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아담의 존재의의가 무엇인가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그대로 반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의요 가치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그들과 닮은 아이를 낳습니다. 부모 형상이 그 자녀에게 있습니다. 형상이라는 말에는 사진을 찍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 찍듯이 하나님 형상을 내게 찍어 놓은 것이 바로 ""라고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 얼굴에는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반사하고 투영하는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우리가 늘 추구하고 닮아가야 하는 하나님 속성이 뭐냐는 것입니다. 이런 속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거룩이라든가, 의로움, 사랑, 선하심, 기쁨, 오래참음, 자비, 양선, 온유, 충성, 절제, 자신감, ... 이 시간은 세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분노를 다스리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자기주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분노에서 나오는 말은 가슴을 찌르고, 상처를 주고, 파괴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극한 손상을 끼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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